기자명 김경훈 기자 (kkh2216@chollian.net)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은 12월 11일부터 내년 3월 13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경희궁>展을 개최한다.
400여 년 전 ‘경덕궁’ 혹은 ‘서궐’로 불리던 경희궁은 창덕궁과 함께 조선후기 양궐 체제의 한 축을 이루던 중요한 궁궐이었다.
이번 전시는 숙종과 영․정조 등 많은 왕들이 사랑했고 창덕궁에 버금가는 궁궐이었던 경희궁 당시의 모습을 조망하고 경희궁의 흔적을 착실하게 찾아 한자리에 모았다. ‘기쁨이 넘치고(慶) 빛났던(熙)’ 경희궁의 모습을 되살려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창덕궁과 더불어 조선후기 양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 특히 경희궁을 사랑 영조의 마음을 담은 어필 글씨를 공개한다.
또 정조가 사랑한 송단, 숙종의 꽃놀이 장소 춘화정, 영조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곳 ‘영취정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경희궁의 가장 높은 곳에 정조는 소나무 두 그루를 심고, ‘송단’이라 일컬으며 이곳에서 시를 읊고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

영조는 육상묘(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가 보이는 영취정에 올라 어머니를 그리워했으며, 숙종은 춘화정을 만들고 그곳에서 관악산을 바라보며 꽃놀이를 즐겼다.

그들이 머물며 즐거워 한 경희궁의 장소 이야기가 전시장에서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서궐도안(보물1534호) 을 비롯하여 다수의 궁중기록화가 소개된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서궐도안과 2013년 종로구청이 수립한 경희궁지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복원배치도를 바탕으로 전성기의 경희궁 모습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함께 전시한다.

더불어 1970년대 후반 서울고등학교와 그 주변 모형, 그리고 경희궁 권역의 현재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시기별로 경희궁지가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1865년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자 경희궁 전각의 목재와 석재는 새로운 궁궐의 자재로 활용되었고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경희궁의 빈터는 명례궁 등 4개의 궁에 토지로서 분배되고 뽕나무가 심겨지는 등 궁으로서의 위상은 점점 사라졌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1910년에는 일본인 관료 자재들의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경희궁 터에 들어서고 궁의 동쪽부지에는 총독부 관사가 건설되었다.

당시까지 경희궁에 남아있던 5개의 전각 중 흥화문은 1933년 박문사의 정문으로, 회상전은 일본계 사찰 조계사(※현재의 조계사와는 다른 일제강점기 사찰) 등으로 매각되어 궁으로서의 흔적은 완벽히 없어졌다.

이번 전시 준비과정의 현장조사 결과로 성곡미술관 자리에 있는 ‘반월형 석조 연못’이 경희궁 춘화정에 설치되어 있던 유물임이 밝혀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춘화정 반월형 석조 연못’ 복제물을 재현하여 전시한다.
경희궁의 숭정전은 일제강점기 경성중학교의 교실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이번 전시회에서는 숭정전에 걸려있던 실제 현판이 공개된다.

경희궁 금천교 밑에 있던 돌거북도 전시되는데 이번에 전시되는 돌거북은 창덕궁 금천교의 돌거북과 마찬가지로 경희궁 금천교 밑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경희궁을 지키던 것이었다.

경희궁 주변 주택가에는 ‘궁중 괴석’(현재 서울역사박물관으로 기증), 200년 이상 된 나무, 기단석의 흔적, 궁장의 모습 등이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으며, 전시에는 이러한 경희궁 흔적의 조사내용을 충실히 담았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토·일·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은 휴관이다. 관람비는 무료이며 자세한 정보는 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2-724-0274)


김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