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결탁한 파렴치한 범죄"

기자명 편집국 (webmaster@every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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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의대 조모 교수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최대 기업체인 옥시에서 거액을 받고 옥시 쪽에 유리한 실험 보고서를 써준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2억 5천만 원 가량의 용역비와 수천만 원의 자문료를 받고 옥시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임산부와 영아들이 원인불명의 폐 손상으로 잇따라 숨지자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옥시는 이를 반박하려고 조 교수에게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조 교수는 실험 수치를 조작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교수가 객관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면 옥시 제품 사용에 따른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 조사를 지켜봐야겠지만 대학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연구를 돈 때문에 기업의 입맛에 맞게 수행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특히 서울대 수의대는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 조작, 2012년 강수경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연구 윤리가 도마에 올랐던 곳이다. 그때마다 연구윤리 규정을 강화한다고 했음에도 또 다시 추문이 불거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조 교수는 연구용역비를 사적으로 지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연구용역비는 대학의 계좌로 입금되는 만큼 대학 측의 관리감독이 허술하지 않고서야 연구용역비를 유용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대학가에서는 교수 개인계좌로 기업이 돈을 입금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조 교수는 개인계좌로 자문료를 받은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조 교수뿐 아니라 호서대 유모 교수도 옥시로부터 1억 원 가량을 받고 이와 비슷한 용역을 수행한 것으로 검찰이 보고 있다고 하니 돈과 결탁한 비양심적 교수들이 어디까지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근본적으로 교수들이 용역비를 얼마나 따오는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기업에서 용역비를 받을 때 기업에 유리하도록 연구결과가 조작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도 시급하다.
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미상의 폐 손상을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고 이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키자 지금까지 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두 교수가 실험을 진행한 시기는 옥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 끊는 때였다. 해당 교수들도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눈물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돈을 받고 조작에 가담했다면 학자의 연구 윤리를 따지기에 앞서 인간 양심의 문제다. 몇 년 전에도 제약사에서 의뢰한 의약품 생동성 시험 결과를 조작한 연구기관들이 처벌받기도 했다. 지식인들의 이 같은 파렴치한 범죄는 그 해악이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경우가 많다.

교육부가 지난해 개정한 ‘연구윤리 확보 지침’에는 ‘연구비 지원기관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는 조항이 있지만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연구자들이 실적 부담, 산학 협력 강조 분위기, 연구실 운영비 마련 등 때문에 기업의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사건의 진실은 3년 이상 뒷짐 지고 있던 검찰이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깨달으면서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환경부 등도 미적거릴 때가 아니다. 역학조사니, 피해자 접수니 하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 이 또한 책임을 모면하려는 술책으로 비칠 수 있다.

정부 부처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3, 4등급 피해자들을 전면 조사해야 한다. 또 이참에 소비자의 생명과 관련된 불법행위를 다스리는 소비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는 정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무이다.

/ 나 경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