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집행위원회,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여사 사회장" 거행

기자명 문철호 기자 (wnddkd9449@hanmail.net)

(투데이미디어 뉴스1/ 문철호 기자) 김대중 전대통령의 부인인 이 희호 여사가 10일 노환으로 향년 9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 희호 여사는 최근 입원해 있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위중한 상태가 지속되는 등 호전과 위중한 상태가 반복되는 등 병세가 지속되다 결국 호전되지 못하고 10일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동안 이여사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아들인 홍걸씨 등 가족들이 병상을 지켜왔다.

고(故) 이희호 여사는 생전인 지난해, 변호사 입회하에 가족의 동의를 받아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이 여사는 유언을 통해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고 아태평화센터 김성재 상임이사가 밝혔다.

이 여사는 또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우리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이되도록 바란다“고 했다. 이 여사는 동교동 사저의 기념관사용 관련문제와 노벨평화상 상금 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할 것 등 이에 대한 모든 책무를 김 상임이사에게 일임했다. 고 전했다.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김성재 상임이사는 故이 희호 여사님의 장례는 유족, 관련단체들과 의논해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자유한국당 황교안·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5당 대표가 고문으로 참여하며, "5당 대표가 모두 장례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정됐다"고 기 상임이사는 말했다.

이 여사는 지난 2009년 8월 김 전대통령의 서거이후 비록 홀로 남았었지만, 그동안 60년대 이후 한국정치사와 더불어 김 전대통령이 겪은 수많은 고초와 함께 대통령 후보로서, 사형수로서, 야당총재로서,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고통과 고난을 함께한 산 증인으로서 또한 민주당진영의 정신적인 어른으로서 자리를 지켰다.

이 여사는 또 당시 야권이 어려울 때 쓴 소리로 단합을, 민주진보진영이 분열의 조짐이 있을 때는 김 전대통령의 평소 강조했던 통합을 외쳤으며, 정권이 바뀐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와 남북 관계과 급속도로 경색 되었을때 는 북한에 대한 ”동포애와 더불어 햇볕정책을 지속 계승해야한다“ 고 질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여사는 생전에 2000년 6·15 남북정상 회담 때와 2011년 12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 2015년 8월 북한 어린이들에게 모자와 장갑 등 물품 전달 등 3차례의 방북을 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서 스카릿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22년생인 이희호 여사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엘리트 여성이었지만 1962년 대한 YWCA총무, 1970년까지 한국여성단체 협의회이사를 엮임 하는 등 여성단체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2년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故 김대중 전대통령과 가족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약 47년을 함께했던 정치적 동지이자 김 전대통령의 재임시는 청와대 안방 주인으로서 여성과 아동 인권 신장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또한 청와대 내의 야당으로서 쓴 소리와 조언을 거침없이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김 전대통령의 재임기간동안에 이 여사는 아들들의 비리문제로 아품을 겪어야했다. 이 여사는 2002년 친자인 3남 홍걸씨와 차남인 홍업씨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잇따라 구속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97세의 일기로 타계한 故이희호 여사는 노환으로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병원신세를 자주지면서, 급기야는 큰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이 타계했을 때도 위중해서 이를 알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탄식이 함께하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영욕의 삶을 살아온 이희호 여사, 이제 이여사가 별세 하게 됨으로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되는 동교동시대의 막도 서서히 사라지게 됐다.